정종환 시 3편

정종환 시 3편

나무와 달 나무는 달을 올려본다달은 나무를 내려본다둘은 구름 위에서차고 넘치는 별빛들과춤을 춘다구름떼 출렁거리자넓고 넓은 땅 위로비가 쏟아지고개구리들 조용하고 쓸쓸한 밤에울어댄다 나무는 가지들을 흔들어달빛을 쓸어 담아서사자,하마,얼룩말,코끼리,원숭이,기린친구들 그림자 쫓아 다니려고밤에만 만난다. 예술의 최고봉 이제 막자폐증에서 벗어난다섯 살 김 수정,방안을 둘러보다가누군가 버린낡은 책상에 앉아 있는내 곁으로 다가와휴지로 가득 찬알루미늄 쓰레기통 뚜껑을 두드리다가나를...
정우림 시 3편

정우림 시 3편

흔들리는 집 집을 짓는다아무도 닿을 수 없는 가지와 가지 사이에 위태롭다,손닿을 거리는 깃털 같은 길이를 달고꽁지에 불을 지핀다 삐걱이는 창문과너의 의도와 나의 우연과구름의 어깨와 육각의 잎사귀들 맞아, 이거야숨 쉴 틈이 보이는 빽빽한 흔들림부리로 물고 날아오르던 날들의 가벼움 설계자 없는 설계중심이 비어 있는 형태와 균형감 우리는 서로 마주한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더 이상 휘지 못하고송곳 같은 발톱으로가지에 매달려집을 짓는다공중에, 흠집의 씨앗과 바람의 못과 금이 간 눈송이가...
이성수 시 3편

이성수 시 3편

한낮 헌책방 볕이 좋은 날빈 가방을 들고 헌책방에 간다.* 오래된 목차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허름하고 가볍게한 페이지씩 양쪽 어깨에 걸친 책방 주인은볕을 쪼아먹은 먼지소반에 뜨거운 양은 냄비로 헌책 표지를 찍는다.젓가락에 끌려 나오는 면발은 언제나 단행본 순정 만화처럼 혼자 운다. 서가는 모든 책의 밑줄다들 중요하고 잘난 날들이지만오래된 문장까지 환한 날들이지만 허기진 가장이 눅눅한 활자를 라면에 말아 먹고 있다.너덜너덜한 나이가 녹슬고 있다. 변색한 책의 곳간누구는...
유금란 시 3편

유금란 시 3편

인천 노란주전자우산동동주골목첫키스예전월미도4시부두비린내용주해운돌멩이1월아버지의겨울낡은간판떨어진모음쫄면축제형검은낙서대동디제이지하밥만두학익동타막네조사김광석물좀주소녹음테이프주황점퍼학사경고은행나무전동1번지여염느릅나무그늘마르크스배다리헌책방용동큰우물아듀장미회관 불안한 활자들과 실랑이 끝에 백야한밤중 펼친 어둠의 갈피에서 잠자고 있는 푸른 짐승 얼음장 밑을 흐르는 어진 냇물처럼가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오늘쯤은 돌아가고 싶은 비밀 나는 변신의 귀재. 감자의 독, 양의 털, 붉은...
김소영 시 3편

김소영 시 3편

아동 발달심리학 아동발달심리를 배우고 있었어요 오월이었는데 늙은 교수가 제 새끼 자랑만 해댔어요 황야의 마녀처럼 빨간 입술로 아파레시움* 주문을 걸어요 찌그러진 호흡으로 교수의 구찌스카프에 매달렸던 하얀 나비는 천천히 그늘 속으로 사라져요 난 그늘을 만들면서 놀았어 푸른 나무에 둘러쳐진 하얀 운동장에서 그 나무를 믿으며 잘 못 자라났지 무럭무럭 믿음은 울창해지고 그늘은 자꾸 캄캄해지지 난 그게 행복한 유년이라고 믿어야만 했는데 엄마는 구멍을 내면서 놀았구나 구멍마다 햇빛이...
김인옥 시 3편

김인옥 시 3편

지옥에서 피어나는 별 전사였던 나이사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무쇠솥, 프라이팬은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찾았고냄비, 수저들은  내 발아래 줄을 섰지무적이었으니까 굴복시킨 건 아니야빛을 발하는 일은 죽을힘을 다해볼 만했으므로모두 폼나게 살 수 있었지등짝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도 물론 있었어가끔씩 시비 거는 어깨들그때 생긴 흉터훈장 같은 거였고 그날 내 주위에만 머물던 퐁퐁, 고무장갑, 행주들까지손발 척척 맞던 시절 따윈 잊은 듯기대와 들뜸저 우월감은 뭘까햇살마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