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달

나무는 달을 올려본다
달은 나무를 내려본다
둘은 구름 위에서
차고 넘치는 별빛들과
춤을 춘다
구름떼 출렁거리자
넓고 넓은 땅 위로
비가 쏟아지고
개구리들 조용하고 쓸쓸한 밤에
울어댄다

나무는 가지들을 흔들어
달빛을 쓸어 담아서
사자,
하마,
얼룩말,
코끼리,
원숭이,
기린
친구들 그림자 쫓아 다니려고
밤에만 만난다.

예술의 최고봉

이제 막
자폐증에서 벗어난
다섯 살 김 수정,
방안을 둘러보다가
누군가 버린
낡은 책상에 앉아 있는
내 곁으로 다가와
휴지로 가득 찬
알루미늄 쓰레기통 뚜껑을 두드리다가
나를 올려보면서
말한다
“드럼”

전쟁에 대하여

어떤 전쟁도
파괴적이고
잔인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다

전쟁터에는
정의가 없다

모든 전쟁은
내전이기 때문이다.

정종환

  • 2021년 미주문학 신인상과 뉴욕문학 신인상 수상.
  • 2023 영시집 “The Islands Are Not Lonely”(Austin Macauley Publishers) 출판.

시작노트

시인의 시작노트는 종군기자의 수첩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보다 더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나무와 달”을 생각하면서 책상에 앉아 봅니다. 블라인드 사이로 깊어가는 익숙한 밤이 말을 걸어옵니다. “나는 너에게 새벽을 선물하려고 여기에 있다.” 그렇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의 모습은 다 다르지만 그것들은 서로 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나무와 달이 그렇고, 장애와 비장애가 그렇고, 전쟁과 평화가 그렇고, 사랑과 이별도 그렇고, 그리고 우리들 인생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늦게나마 알게 된 기쁨을 어려웠지만 쉽게 쓰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큰 도전이겠지만, 시를 쓰고 읽고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는 한 두려운 미래가 아닌 소통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 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위대한 시인들이 그렇게 했듯이 피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가게 하는 시의 힘에 의지해 봅니다.

저의 시작노트도 언젠가는 자신의 목숨을 전쟁터 속 진리를 알리는데 바친 종군기자 M의 순결함이 묻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