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과 둘러보는 도시와 건축(LA편)
- 역사에서 로스앤젤레스의 등장
1781년,
태평양 바닷가에서 가까우면서 개천이 흐르는 한적한 들판에 작은 마을 하나가 세워진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los angeles다. 현재는 미국 제2의 도시지만, 243년 전은 정말 미약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고, 멀찍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마을이 보이는 곳이었다.
한편 캘리포니아 초대 총독을 지냈던 펠리페 데 네베가 임기를 마치고, 현재의 멕시코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을 포함한 44명이 건너와 현재의 유니온 스테이션 일대에 자리잡는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선언을 한 이후 10년 넘게 영국과 독립전쟁 중이었으니까, 다른 곳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원래 이름은 El Pueblo de Nuestra Señora la Reina de los Ángeles de Porciúncula로 뜻은 ‘포시운꿀라 강의 천사가 다스리는 마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렇게 긴 이름 중에서 천사를 뜻하는 단어, angeles만 남아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그럼 1781년 이전의 LA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기원전 20,000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옮겨오기 전까지 그들의 삶은 그다지 변한 게 많지 않았다. 1750년 무렵부터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이 캘리포니아 일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당시 주변 상황을 살펴보면, 왜 스페인이 캘리포니아에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는1500년 즈음부터 동쪽으로 계속 영토를 넓혀 가더니, 어느새 베링해협을 건너 1750년 즈음에는 알래스카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대개 동물 모피를 쫓는 사냥꾼들이었는데, 러시아가 바다 건너 알래스카까지 온 이상,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은 기정 사실로 보였다.
이 무렵 스페인 국왕은 러시아의 남하가 예상된다는 보고를 받자, 바로 비상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현재 멕시코까지 내려오기 전에, 미리 스페인의 영토를 북쪽으로 넓히기로 결정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군대를 보내는 대신, 미리 카톨릭 신부와 시종을 보내서 캘리포니아 일대를 정찰하게 한다. 얼마나 먼 거리냐 하면, 한국의 최남단 목포에서 출발했을 때 북한을 지나 만주 일대까지 걸어서 돌아보는 엄청난 거리였다. 말로는 종교적인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인 포석이었다. 신부 일행은 캘리포니아 일대에 산재한 원주민 마을을 꼼꼼히 살펴본다.
긴 원정 후 멕시코로 돌아온 다음, 스페인 국왕에게 군사를 보내면 전쟁 없이 영토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보고한다. 사실 원주민들은 토지 소유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이들 일행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생각해서 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강도나 다름없었다. 스페인은1767년에 원주민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캘리포니아 일대를 스페인의 영토라고 선포해 버린다. 사실 원주민들은 스페인이 자신이 사는 땅을 스페인 영토라고 선포한 사실조차 알지 못 했다. 뉴스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서, 스페인 정부는 사람들을 보내서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mission이라고 불리는 선교 마을을 하나씩 짓기 시작한다. 원주민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번에도 종교를 앞에 내세우면서 선교마을을 지어간다. 제일 처음이 샌디에고(1769)이고, 제일 북쪽이 샌프란시스코(1776)다. 캘리포니아에 총 21개의 선교마을이 지어진다. LA 인근에도 2개가 지어지는데, 하나가 샌가브리엘(1771) 이고, 다른 하나가 샌퍼낸도(1797)다.
미션은 선교라는 종교적인 목적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주변의 원주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커다란 성채를 지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의 터전에 제멋대로 건물을 짓다 보니 무력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빼앗긴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미션은 자연스레 종교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성벽을 두껍고, 높게 쌓고, 안에는 자신들의 주거용 시설 뿐만 아니라 텃밭도 꾸리고, 비상시에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작은 마을 기능을 하게 꾸몄다.
만약에 미션에 가고 싶다면, 이 두 곳 말고, LA에서는 좀 멀지만, 오렌지 카운티 남쪽에 있는 San Juan Capistrano를 추천한다. 가면, 교회 부분이 지진에 의해 파손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돔 부분이 반 정도 남아 있어서, 남은 유물을 통해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생활공간에 가면,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한국의 고건축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에서는 중정을 끼고 집을 짓는 건축 문화가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새 땅에 집을 짓더라도, 자신들이 아는 방식으로 집을 짓기 마련이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와서도 김치를 먹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될 거다.

김태식
- 인문학을 바탕으로 사람이 어울려 사는 도시와 건축을 꿈꾸는 건축 디자이너
- 학력 :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학부와 대학원 졸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원 졸업
- 출판 : 로스앤젤레스 건축 읽기 (2019년), Spacetime
- 현재 URD에서 건축 설계와 시공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