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시 3편

이성수 시 3편

한낮 헌책방 볕이 좋은 날빈 가방을 들고 헌책방에 간다.* 오래된 목차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허름하고 가볍게한 페이지씩 양쪽 어깨에 걸친 책방 주인은볕을 쪼아먹은 먼지소반에 뜨거운 양은 냄비로 헌책 표지를 찍는다.젓가락에 끌려 나오는 면발은 언제나 단행본 순정 만화처럼 혼자 운다. 서가는 모든 책의 밑줄다들 중요하고 잘난 날들이지만오래된 문장까지 환한 날들이지만 허기진 가장이 눅눅한 활자를 라면에 말아 먹고 있다.너덜너덜한 나이가 녹슬고 있다. 변색한 책의 곳간누구는...
유금란 시 3편

유금란 시 3편

인천 노란주전자우산동동주골목첫키스예전월미도4시부두비린내용주해운돌멩이1월아버지의겨울낡은간판떨어진모음쫄면축제형검은낙서대동디제이지하밥만두학익동타막네조사김광석물좀주소녹음테이프주황점퍼학사경고은행나무전동1번지여염느릅나무그늘마르크스배다리헌책방용동큰우물아듀장미회관 불안한 활자들과 실랑이 끝에 백야한밤중 펼친 어둠의 갈피에서 잠자고 있는 푸른 짐승 얼음장 밑을 흐르는 어진 냇물처럼가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오늘쯤은 돌아가고 싶은 비밀 나는 변신의 귀재. 감자의 독, 양의 털, 붉은...
김희봉 수필

김희봉 수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명콤비를 이뤘던 “내일을 향해 쏴라”는 1969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였다. 서부 개척 당시 두 무법자, 선댄스 키드(Sundance Kid)와 부치 캐씨디(Butch Cassidy)의 굵고도 극적인 일생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그 무대가 와이오밍이었다.  선댄스는 주 경계의 불과 천여명 남짓한 소읍. 용암 더미가 5천 피트나 솟은 악마의 탑(Devil’s Tower)에서 동쪽으로 15마일, 옛 인디언 성지, 블랙...
김태식의 건축이야기

김태식의 건축이야기

김태식과 둘러보는 도시와 건축(LA편) 역사에서 로스앤젤레스의 등장 1781년,태평양 바닷가에서 가까우면서 개천이 흐르는 한적한 들판에 작은 마을 하나가 세워진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los angeles다.  현재는 미국 제2의 도시지만, 243년 전은 정말 미약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고, 멀찍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마을이 보이는 곳이었다.  한편 캘리포니아 초대 총독을 지냈던 펠리페 데 네베가 임기를 마치고, 현재의 멕시코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김소영 시 3편

김소영 시 3편

아동 발달심리학 아동발달심리를 배우고 있었어요 오월이었는데 늙은 교수가 제 새끼 자랑만 해댔어요 황야의 마녀처럼 빨간 입술로 아파레시움* 주문을 걸어요 찌그러진 호흡으로 교수의 구찌스카프에 매달렸던 하얀 나비는 천천히 그늘 속으로 사라져요 난 그늘을 만들면서 놀았어 푸른 나무에 둘러쳐진 하얀 운동장에서 그 나무를 믿으며 잘 못 자라났지 무럭무럭 믿음은 울창해지고 그늘은 자꾸 캄캄해지지 난 그게 행복한 유년이라고 믿어야만 했는데 엄마는 구멍을 내면서 놀았구나 구멍마다 햇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