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집

집을 짓는다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가지와 가지 사이에

위태롭다,
손닿을 거리는

깃털 같은 길이를 달고
꽁지에 불을 지핀다

삐걱이는 창문과
너의 의도와 나의 우연과
구름의 어깨와 육각의 잎사귀들

맞아, 이거야
숨 쉴 틈이 보이는 빽빽한 흔들림
부리로 물고 날아오르던 날들의 가벼움

설계자 없는 설계
중심이 비어 있는 형태와 균형감

우리는 서로 마주한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더 이상 휘지 못하고
송곳 같은 발톱으로
가지에 매달려
집을 짓는다
공중에,

흠집의 씨앗과 바람의 못과 금이 간 눈송이가 쏟아지는
나무 꼭대기에,

들깨를 털다

한낮을 놓치고 들깨를 터는 저녁이다
땅거미가 손바닥으로 슬그머니 내려오는 초저녁에
자작자작 잠든 알갱이들을 깨우는 중이다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한 무더기 쌓인 고소한 향기가
주위를 감싼다
부러지는 가지, 매달린 마디에서
쏟아지는 한 알 한 알

때를 놓치고 만 날들이
여기 달려 있다

손아귀에 힘주며 막대기로 두드린 날들
한꺼번에 얻어 내려 일찍 베어 낸 날들

손은 서두르지 않는 리듬을
조금씩 아주 천천히 조율한다

뒤집어서 털고 또 뒤집어서 털다
발견한 고요한 소란

 낙상한 시 알갱이들이
아래로 아래로
쌓인다

흰 그림자를 따라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 삶은 옻닭의 살은 소름이 돋아 있다 배꽃은 왜 일주일만 피는 걸까 표정 없는 나무의 그림자 신발 끈을 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그림자를 따라 더 멀리 도망갈 수 있을까 목이 긴 그늘 속에서 천진난만한 바람의 귀 어제에 대한 의심이 FM 라디오 속으로 흘러간다 흩어지는 꽃잎 누가 배꽃을 솎아 내고 있나 바람은 평상 주위에서 맴돌다 흰 그림자를 따라간다 만약을 비껴갈 궁리 너는 발이 없는 몽상가 과수원에서 옻닭의 연한 살을 찢어 서로의 접시에 놓아 준다 혼자서 가지고 놀다 지친 일주일의 닷새는 사라졌다 한때 흥얼거리던 가수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들려온다 나보다 키 큰 그늘의 구멍 안에서 나를 삼키는 것은 나의 울음 한 번 딛고 한 번 날고 끝이 없는 꽃눈 맨발로 춤을 춘다 당신의 눈 속에 배꽃이 피었다 담 주말쯤엔 꽃이 지겠지 돌고 돌아 비스듬히 닮아 가는 저녁의 노을빛 검은 가지의 붉은 근육 불빛이 새어 나온 틈의 문을 민다 액체처럼 흐르는 그림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발소리 따라 걸어간다

어둠의 미늘 속에서 배꽃이 반짝,
공중에 꽂힌다

정우림

  •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 2014 <열린시학> 등단

  • 시집 <살구가 내게 왔다>, <사과 한 알의 아이>

  • 그림을 함께 그리고 있다.

시작노트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에 집을 지어 삽니다. 이곳은 소리와 소리의 울림이 아침을 열고 밤과 새벽을 조율합니다. 감각이 신체와 접촉하며 떨림이 느껴집니다. 온도와 습도와 바람의 방향에 예민해집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 때는 몰랐습니다. 이토록 진동이 가득한 입구가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 속에서 들려오는 느낌이 춤추는 것을. 다시 촉각에서 치유의 정서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시를 씁니다. 보드랍게  때로는 날카롭게 반짝이는 속내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만지고 공중을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상상합니다. 골짜기에서 가장 키 큰 나무꼭대기에 새집이 생겨납니다. 둥지를 짓느라 수만 번 날아오른 새들을 생각합니다. 곧 알에서 깨어날 새들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제 안에 시의 둥지를 짓는 한 마리 새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