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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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활자들과 실랑이 끝에 백야
한밤중 펼친 어둠의 갈피에서 잠자고 있는 푸른 짐승
얼음장 밑을 흐르는 어진 냇물처럼
가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오늘쯤은 돌아가고 싶은
비밀
나는 변신의 귀재. 감자의 독, 양의 털, 붉은 승냥이의 심장. 태어나면서 밀봉된 것들이에요. 소문이나 염려를 뒤로한 채 오전과 오후를 혀 속에 가두기로 해요. 어둠이 밝음보다 나음을 잊지 않아요. 이젠 은밀한 말이 암흑 속에서 죽어가도록 참는 일만 남았어요. 어쩌지요. 호기심이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혓바닥에 뿔이 돋아요. 여름에 우박이 내린다는 예보에 가슴이 먼저 두근거리는 건 눈과 귀를 잠그지 못한 손가락 잘못이에요. 재스민 향은 마술 같아서 혀 뒤편에서 먼저 녹아내려요. 참을성 없는 저녁이 벌써 음부까지 내려왔어요. 아무도 모르게 폭동이 일어난 것일까요. 열린 입술이 피투성이가 되어 울부짖네요. 자줏빛 거짓말에 속아 얼마간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요. 빈 어둠은 여전히 빨간 혀를 날름거리고 빛은 아직 두려움이에요. 저기 누군가의 절실한 내부가 보이나요. 누렇게 바랜 진실이 열 개의 다리를 끌고 현관 앞에 쓰러져 있어요. 혹시 나를 다 읽어낸 빛을 본 적 있나요?
타롱가* 동물원에서
개찰구에서 분홍색 입장권이 손목에 채워지는 순간
견디는 쪽으로 기우는 서늘함이 손목을 조여온다
이런 바닷가에 기린의 목처럼 길게 솟은 집을 짓고 싶어 했던 당신은
바랑가루 빌딩 23층에 입주한 글로벌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며 나를 초대했었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일터래, 저기 건너 타롱가 주가 보이지? 내 꿈의 반은 이룬 거야
워터 뷰가 출세의 입장권인 양 좋아하던 당신과
이곳에 아파트를 지으면 정말 잘 팔리겠다고 하던 친구의 얼굴이
같은 어둠으로 겹쳐진다
어쩌자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이 멋진 조망권을 동물과 건물에 빼앗겼단 말인가
아름답다는 느낌에는 태생적 슬픔이 도사린다
싸구려 아름다움과 고결한 빈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
우리가 우리에 갇힌 우리가 되어 우리로 같아지는 세상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성이 사라진 인간과 동물성이 사라진 동물
우리 안으로 먹이 하나 슬쩍 던져주고 갈비뼈까지 스캔해 가는
사회관계망에 걸린 우리들
어젯밤에도 나는 보낼수록 되돌아오는 말꼬리에 끌려다니다가 끝내 내 몸이 게워낸 괴물과 마주하고 말았다 함부로 들키면 안 되는 파열음이었다
분홍 팔찌를 떼어 버리고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발뒤꿈치에서 검디검은 피가 흐른다
반인반수의 피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경치’란 뜻의 원주민 어로,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한 시드니 주립 동물원 이름이다.

유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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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시산맥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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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5인 공저 『바다 건너 당신』
시작노트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죽어가는 빛의 노동이 나의 시 짓기와 비슷해 보인다. 반복되는 노동을 멈출 수 없어 나는 죽어갈 빛을 또 생산한다. 그리고 다시 깜깜해진다. 언어의 시체들이 겹겹 쌓여 진실을 덮는다. 말하지 못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들까지 이해받고 싶어 문장이 자꾸 길어진다. 행간의 비밀을 나누어 가진 당신들이 멀어지는 게 자꾸 아프다.
잠꼬대가 가장 아름다운 시였으면, 했던 날들
그때 내 손목에 분홍 팔찌가 걸려있었어요
그게 분홍말 분홍눈빛 분홍커피 분홍의 몸이었지요
분홍이 가르키는 곳은 모두 아름다운 벼랑, 그것도 모르고 분홍안대를 풀지못하던 시간, 그 아슬아슬한 발밑엔 시가 가득 출렁거렸을텐데요,
자주 잠꼬대를 걸어놓고 뒤돌아나왔어요 누군가 자꾸만 멀리가서 바라보라고 해서요,
지금도 그 말이 꿈결에 들리긴해요 분홍 분홍 분홍 하며…
어둠의 갈피 속에 웅크린 단어들,
기억의 혈관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겉만 아문… 상처 같은 그 때가 보이고
문득 이는 현기증을 털어내려
문장을 토막 치는데,
그럴수록 더 살아나 펄떡대는 그 시절 인천 어느 곳,
비밀은 비밀이라서
호기심이 옆구리를 찔러도
혓바닥에 뿔이 돋아도
혀 속에 가둘 수밖에 없어요
혹시 비밀의 속성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어둡고 빨갛고 날름거리는 그 것,
여기저기 주사바늘을 찌를 때는
가슴이 따끔 따끔 했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이렇게도 반가울 수가,
오늘도 눈부시게 ‘으앙’!
샘이 많아질까 봐 새미가 되었지만
샘을 부리지 않아
착함과 예쁨이 샘처럼 퐁퐁 솟아나는,
그래서 반쪽이가 아니고 두쪽이도 아닌
양쪽에서 모두 온전한 ‘한쪽이’